괴로움이 그리움이 되는 과정 by 한다나

모든 기억은 좋게 남기 마련이다. 거진 미화 된다.


본Bonn에 있을 때, 나는 그 곳이 너무 싫었다. 무의미한 학원 수업, 전혀 친하지 않고 그런 노력 조차 하지 않는 클래스의 사람들, 내가 생각하는 위생 관념과 너무나 다른 곳인 WG, 하늘 끝까지 올라 갈 것 같은 가파른 경사 위에 있던 우리 동네.
우린 매일 같이 본을 뜨는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 렸다. 열 다섯 번만 이 지랄 같은 수업을 들으면 돼, 열 번만 다섯 번만...


어쨌든 우리는 그럭저럭 시험을 봤고, 원하던 결과를 얻었고, 산뜻하게 그 곳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오스나브뤼크Osnabrück에 오자 마자, 나는 내가 한 달간 있었던 본이 조금씩 애잔하게 느껴지기 시작 했다.

너무 싫었던 시간도 과거가 되면 한없이 좋게 기억되기 시작한다.
그런 걸 보면 머릿 속 기억 장치는 참으로 편리하게 구성 되어 있는 듯 하다.



아주 자유롭게 뒤로 탔던 버스, 어떤 집을 봐도 예쁘고 아기자기 했던 내가 살던 산에 있는 동네, 자전거를 타고 아침 공기를 마시며 달리던 학원으로 가는 1km, 장을 보던 REWE, 매일 같이 해먹던 맛있는 음식, 잔뜩 내리 쬐는 태양 속에서 걷던 본의 거리...

우습게도 점점 괜찮았던 기억이 되고 있다고.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 그러겠지.
난 어딜 가나 당장의 만족은 못 하더라도 그 곳을 벗어 나면 좋게 기억하고 그리워 하며 살 것 같다.
그 기억과 그리움 따위가 또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니까.


연애의 시작 by 한다나

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 왔다. 요정을 처음 봤을 때 요정의 첫인상에 크게 호감을 느끼진 못 했다.
요정은 작은 체구에 당시 실기를 위해 연습에만 몰두 하느라 의도치 않은 단식을 해서 8kg가 빠져 있었고, 빼빼 마르고 안경 낀 작은 남자가 비슷한 남자와 지나가는 걸 봤을 때 그냥 한국인이구나 하고 말았다.
요정과 아는 사이가 된 건 시월 초 쯤 이었던 것 같다. 같은 어학원을 다니게 돼서 클래스는 다르지만 한국인이고 내가 아는 사람과 아는 사이니까 인사를 하고 그다지 친하지 않을 때 Kneipe에 다 같이 가서 번호를 교환하고 맥주를 마셨었다.


요정씨와 급격하게 친해지게 된 건 나랑 친한 동생이 요정씨와 꽤 오래 아는 사이였는데 같은 어학원 같은 클래스가 되면서 많이 친해지게 됐고,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마른 요정씨의 모습에 맛난 것을 해주겠노라 하며 요정씨의 집에 같이 가게 됐을 때 부터 였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한국의 매운 음식에 요정씨는 매우 열광하며 불닭을 거의 울면서 먹었다. 안타까운 마음과 선한 인상에 말도 착하게 하는 그에게 호감이 생겼고 앞으로 자주 밥을 해주기로 약속 했다. 처음 봤을 땐 무관심, 두 번 봤을 땐 측은지심이었다.


요정씨는 한참을 어린 우리들과도 잘 놀아줬고(그는 음악을 하러 온 유학생이라 어차피 아는 동생들도 거의 다 나보다 어렸다) 우리의 개드립에도 아주 잘 어울려 줬다. 한 번을 같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두 번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고, 세 번을 먹으며 장을 보러 가고, 밤에는 맥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도서관도 같이 가고, 학원도 같이 가며 그와 나는 무척 친해졌다.


그는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전혀 모르는 사이임에도 언젠가는 친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된 걸 보니 조금 신기하기는 하다. 아무튼 빠르게 가까워 졌지만 그는 나에게 아주 산뜻하게 대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대개 유익했고, 나의 얘기도 잘 들어 줬고 작은 고민 상담도 친절하게 응해줬으며 부담스럽지 않은 반응, 언제나 바른 말을 골라서 하는 말투 모두 내 마음에 들어 왔다.


특히 그가 음악 이야기를 할 땐 누구보다 진지했고,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절히 알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쉽게 풀어서 설명 해주고, 그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이건 어떻고, 누구의 음악이고, 이 작곡가는 어땠다 하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이 사람의 피아노는 이래서 훌륭하고, 어떤 것을 아주 잘 치며, 이런 테크닉이 좋다는 이야기. 내가 봤던 사람 중에서 가장 자신의 길을 사랑하고, 확실한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없는 열정을 갖고 있는 그가 부러웠고, 점점 유학 생활에 확신을 잃어 버리고 있을 즈음에 그는 동경이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음악이 아닌 길을 가보려고 부던히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이 곳에 왔다고 말 했을 때 아마 처음으로 두근거림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연애를 시작하기에는 애로사항이 참 많았다.
우선 표면적으로, 그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겉모습도 그리 어울리지 않고(안타깝게도 우리는 키가 매우 비슷하다. 난 너무나 크고 그는 작다. ㅠㅠ) 무엇 보다 갈 길이 달랐다. 그는 작년 겨울 학기에 이미 학교가 정해져 있었지만 여러 문제로 입학이 보류 되어 있는 상태일 뿐이라 정상적이라면 올해 봄에 학교에 갈 예정이었고, 그 학교가 있는 도시는 내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유학생의, 특히 어학을 하는 학생들의 연애의 시작이란 대개 진로의 문제의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예전과 같은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스물 넷에는 연애 해야지 하고 결심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이라 만으로 낮출까 생각 중이었고 -_-;;......그리고 그의 마음도 알쏭달쏭 했다.
분명히 나랑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걸 보면 호감이 아예 없지는 않을테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잘 알 수 없었다. 나를 동생으로만 생각 하는지 그 이상이 있는지. 결국 같이 도서관에 가던 중에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추운 척 하면서 손을 잡았고 그는 내치지도 꼭 잡지도 않았다. 그런 미묘한 상태로 도서관에 거의 다 오자 내가 후딱 손을 놔버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하다 친구에게 털어 놨더니 그냥 질러 보라고 했다. 아니면 마는 거고, 인연이면 너한테 오겠지. 라는 말을 들었지만 언제나 먼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혹시 그가 같은 마음이 아니면 고백을 안 하느니만 못 한 사이가 되니까...
어쨌든 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마음을 털어 놓게 되었고, 그는 믿지 않았다.................
진지하게 고백하기에는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많은 장난과 드립을 쳐왔으니까..........................OTL

진짜 용기를 내서 세상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남에게 먼저 해봤는데 돌아 오는 건 드립이라니.
아 내인생.........결국........................난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사귀자고!!! 나랑 사귀자고요!!!!!!!!!!' 라고 외치며 장렬하게 전사 했다.





O<-<
멱살녀
남자한테 고백하는데 멱살 잡고하는 멱살녀


달달했던 이야기가 갑자기 개그가 된 것 같지만 뭐 사실 친했을 때부터 달달하진 않았다. 누가 더 웃기나 내기 해야 할 정도였음.



음... 뭐 아무튼... 그 뒤에 다시 진지하게 얘기를 했고 나름 아주 약간 드라마 같은 에피소드와 함께 연인 사이가 되었음. 나중에 물어 보니 정말로 내가 장난 치는 줄 알았다고. 같이 놀던 동생(우리를 처음 알게 해준)에게 사귄다고 얘기 했을 때도 30분 정도 절대 안 믿었다. 반 시간 있다가 '정말이야?' 라고 물어 봤다능. 장난은 조금만 칩시다 이게 바로 양치기 소년 아니겠슴까. orz

그렇게 시작해서 점점 서로가 소중해지고 석 달 동안 크게 싸운 일 없이, 아주 힘든 일도 있었지만 잘 넘겼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너무나 좋은 사람이기에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 과정에도 그가 용기를 줄 것이고 나 역시 그의 힘이 되도록 노력하며 알콩달콩 살려고 한다. 그러니까 얼른 공부를 하러 가야지...........ㅠㅠ 의도치 않게 한 달 간 떨어져 지내는데 빨리 좋은 결과로 그에게 갔으면 좋겠다! 끗!

이사 준비 중 by 한다나

아 정말 힘들다....... 뭘 두루두루 갖추고 산 것도 아닌데 끝도 없이 나오는 짐들. 천성이 게으르고 점점 더 게을러지는 나라는 인간에게 이사란 너무나 큰 퀘스트이다. 유학생 중에서도 최하층민인 나도 짐이 이만큼씩 나오는데 여기서 몇 년 씩 살았던 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ㅠㅠㅠ 아 드러눕고 싶다.

중간에 생리통을 핑계로 드러 누워서 오유를 하다가 묵묵히 짐 정리를 하는 청소 요정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밥 먹이고 내 짐을 다시 정리 중.

아 드러 눕고 싶다.......한 달 동안 가는 본에서는 정신 바삭바삭 차리고 시험 공부 해야 하는데 이 썩어 빠진 정신머리로 괜찮을까 엉어어우엉ㄴ 독일 전문 용어로 Keine Lust(의욕 없떠염 뿌우) 라고 할 수 있다고나 할까나리삐리용용


이제 청소 요정이 돌아 왔으니 또 짐정리를 하고 배 아프다고 드러 누워서 시위 하다가 짬뽕 요정이짬뽕을 만들 때 옆에서 도울 것이다ㅇㅇ

어 근데 스파게티면이 없다네.



으어잉아우우ㅗㅇㅇ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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